한국 게임의 역사 20년, 사전에 담다. '게임사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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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의 역사 20년, 사전에 담다. '게임사전' 공개
  • by 정보라
국내 게임 관련 석박사급 인력 62명이 투입되어 1년 6개월 동안 표제어 2,188개를 1,304페이지에 정리했다. 엔씨소프트문화재단과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 출판사 해냄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책 한 권을 공개했다. 한손에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이 책은 게임사전으로, 책 두께만 7cm에 달한다.

[게임사전, 두껍다. 분량도 많다.]


게임인의 긍지로 만든 사전


이 자리는 “게임은 한국이 인력, 기술, 산업 인프라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몇 안 되는 분야”인데 “자주, 쉽게 폄하”되었기에 “사회적 편견과 무관심을 극복하고 건강한 게임 문화를 발전시키”고자 했다는 윤송이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이사장의 말로 문을 열었다. 현장에 오지 못한 윤 이사장은 짧은 영상으로 인삿말을 전했는데 한국이 게임 강국이라지만, 용어 하나 앞장서 정리하지 않은 현실을 꾹꾹 짚었다.

짧은 메시지에서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받은 편견이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사전 편찬을 이끈 이재성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전무는 “게임이 굉장히 많이 폄하”되고 있다며 “예의 없는 자리에 참석해서 불쾌한 경우도 있었다”는 그간의 경험을 털어놨다. 이 현실을 푸념만 하지 않고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은 게임의 위상을 높일 방법을 고민했다. 그 방법은 게임 용어를 정리한 게임사전 편찬이었다.

게임사전은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이 감수하고, 이인화 이화여자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교수와 같은 대학교의 한혜원 부교수가 책임 집필했다. 사전을 내던 출판사가 사전 편찬부를 축소 또는 폐쇄하는 현실에서 아주 오랜만에 시도한 작업이다. 표제어를 선정하고 용어를 설명하는 과정은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의 석박사 급 인력 62명이 참여해 이뤄졌다.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은 편찬 작업에 드는 비용을 후원했다.

[게임사전 책임편집인 이인화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 교수]


게임 커뮤니티의 5년치 텍스트 7.7GB를 사전으로


사전을 만드는 데 바탕이 되는 데이터는 인벤커뮤니케이션즈의 사용자 게시판에 5년 동안 올라온 글을 활용했다. 텍스트 파일인데도 7.7GB에 달하는 분량이다. 게임사전 편찬팀은 이 데이터에서 게임사전 말뭉치를 구성했다. 말뭉치는 사전을 편찬하거나 언어를 연구할 때 컴퓨터가 이해하도록 모은 언어자료를 말한다. 몇 명이서 취미삼아 되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이 아니라, 진지하게 만들었음을 드러내고자, 사전편찬팀은 게임 기자들 앞에서 사전 편찬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제 60여 명이 1년 6개월을 꼬박 들여 만든 결과물을 살펴보자. 가로 15.2cm 세로 22.5cm 두께 8cm 무게 2.234kg 의 양장본 책이다. 출간일은 6월 30일이고 값은 6만8천 원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을 받고 있으며 10% 할인을 적용하여 6만1천2백 원에 판매 중이다.

<게임사전>

엔씨소프트문화재단 편찬, 이어령 감수, 이인화·한혜원 책임집필, (株)해냄출판사 펴냄

펴낸날⎪2016년 6월 30일  책의 형태⎪신국판, 책의 장정⎪양장 

면수⎪1,304쪽, 값⎪68,000원

ISBN : 978-89-6574-549-5(03000)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게임 용어를 설명했고 후반부는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 게임 사용자에게 의미가 있는 대표 게임선을 소개한다.

게임 용어는 3가지 부문에서 표제어를 모았다. 게임 개발자 사이에서 쓰이거나 게임 개발 방법에서 쓰이는 용어, 사람들이 게임을 하면서 채팅방에서 혹은 게임 사용자끼리 쓰는 용어, 게임을 둘러싼 사회와 산업에서 쓰는 용어다. 사전을 들추면 게임 사전이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나 ‘로밍’,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등 2010년대 한국에서 게임을 둘러싸고 나오는 말을 망라했음을 알 수 있다.

게임사전을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넘기면 미흡한 점 하나를 느낄 것이다. 2016년에 새로 나온 용어나 현상, 게임이 없다. 사전 표제어를 선정할 때에 인벤의 2010년 4월부터 2015년 3월까지의 데이터를 활용한 탓이다.

뜻풀이할 용어를 고르는 작업은 지난했다. 말뭉치에서 출현 빈도를 세어 높은 순으로 추리고, 출현 빈도가 낮더라도 게임사나 게임 문화에서 의미가 있다고 여긴 용어는 따로 추렸다. 사용자에게도 표제어 추천을 받았는데 1천명 이상이 제안한 8839개 중에서 게임 용어 13개와 게임 14개를 표제어에 추가했다.

[게임사전은 표제어와 영문 또는 원어를 표기하고, 그 아래에 한 줄로 뜻을 기술했다. 용어의 유래와 쓰임새, 유의어, 참고 자료 등은 용어 정의 아래에 상세히 기술한다.]

게임사전은 게임인끼리, 게임인과 비 게임인끼리 소통 돕는 다리


한국에 온라인 게임이 등장하고 20년이 흐르는 동안 게임은 만들고, 하는 것이었지 누군가 체계적으로 정리한 일이 없다. 사전편찬팀은 첫 번재 표제어 ‘ㄱ’ 의 ‘가마수트라’를 풀이할 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게임 개발자와 디자이너, 학자가 블로그를 개설하고, 기사를 공유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게임 행사 일정을 공유하는 가마수트라를 한마디로 무어라고 뜻풀이할지가 난감했다. 게임사전은 표제어를 큰 글자로 쓰고 바로 밑에 한 줄로 뜻풀이를 하는데 명사형으로 끝낸다. 예를 들어 “게임사전: 2016년 6월 30일에 나온 게임 용어를 뜻풀이한 책”처럼 말이다. 

“게임이라고 하는 매체가 굉장히 다양한 매체 변환과 기술 혁신 속에 있는데 표제어를 한 줄로 요약하여 정의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고 이인화 교수는 가마수트라를 정리하던 어려움을 말했다.

일본의 소설 ‘배를 엮다’는 사전 한 권을 15년 편찬한 사전 편찬팀의 얘기를 다룬다. 이 소설에서 사전은 언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돕는 나침반이자 길잡이가 사전이다. 게임사전의 책임편집인 한혜원 교수도 비슷한 말을 했다.

“게임 단어는 일상에서 소통하며 나타나는 용어입니다. 그 용어는 밖으로 나와서 일상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확장되고요. 게임 세계가 따로 있고, 일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 둘이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맺고 언어가 순환합니다.”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르게 알면 소통이 될까. 내가 쓰지 않는 뜻이더라도 서로 어떤 뜻으로 쓰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로밍과 아이템, 강화, 딜러, 파티, 물약, 버스를 게임하는 10대는 무슨 뜻으로 쓰는지 아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이재성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전무는 게임사전이 게임 세대와 비 게임 세대, 부모와 자녀가 소통하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게임 언어는 점차 비 게임 사용자에게 퍼진다. 이재성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전무는 아래 단어 20개 중 얼마나 이해하는지 물었다. 로밍을 통신 용어로만 알면 당신은 구세대다.  정답은 이 글 마지막에 싣는다.

[이재성 전무는 '게임 세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어 20개로 소개했다. 게임사전을 활용하여 '게임 세대 문화 알기'나 '자녀가 하는 말 이해하기'와 같은 콘텐츠가 나오지 않을까.]

위에서 언급한 단어 7개를 사람들이 어학 사전에 뜻풀이한 것과 다르게 쓴다고 하여 막는 게 능사일까. 이는 게임 용어를 쓰는 사람을 낮춰 보는 것이다. 게임 용어가 일부에서 쓰이는 게 아니라 비 게이머에게 퍼지는 현상이 분명 나타나고 있다. 어느새 기사에 ‘득템’이란 단어가 나오고 있지 않나. 게임 기사가 아닌데도 말이다.

이인화 교수는 “아무도 겜돌이를 언중(言衆)으로 존중하지 않았”고 “문화를 전수하고 재생산할 능력이 있고 문화 자본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를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게임사전이 게임용어집에 그치지 않기를 한 말이다. 이는 60여 명이 1년 반이라는 기간을 골몰하며 보낸 까닭이기도 하다.


사전보다 학습서로 읽기를 추천, 단행본처럼 편집

종이사전에 익숙한 세대에게 게임사전은 낯설기 그지 없다. 사전이라 하면 얇디 얇은 종이에 2단 편집하였고, 궁금한 단어가 있을 때에만 들추지 않던가. 게임사전은  미색모조지 80g에 1단으로 편집했다. 출판을 맡은 해냄출판사의 김단비 편집자는 발췌독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며 읽기 좋으라고 단행본 스타일로 디자인하였다고 설명했다.

게임사전을 공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질문 가운데 자주 나온 게 있다. 질문하는 사람은 다른데 단어 하나씩 바꿔서 이렇게 물었다. “□□□는 있는데 ○○○는 왜 싣지 않았나” 또는 “★★★는 길게 설명하면서 ☆☆☆는 왜 짧게 기술했나”였다. 특히 게임사전의 후반부 대표 게임선에 질문이 몰렸다. 표제어를 선정하고 기술하고, 분량을 정하는 데에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다. 모든 사전은 편찬자의 주관이 들어간다. 표제어를 선정하는 순간부터 그러하다. 한혜원 교수는 말뭉치에서 출현한 빈도를 고려하고, 콘솔 게임보다 온라인 게임을, 혼자하는 게임보다 여럿이 함께하는 게임을 더 다루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게임사전에 실린 시대별 대표 게임선은 다음과 같다.

1950~1970년대 테니스 포 투 / 스페이스워! / 퐁 / 메이즈 워 / 던전 앤 드래곤 / 스페이스 인베이더

1980년대 랠리 엑스 / 로그 / 미스터리 하우스 / 조크 / 팩맨 / 갤러가 / 동키콩 / 울티마 I : 더 퍼스트 에이지 오브 다크니스 / 울펜슈타인 / 위저드리 ⋯ 페르시아의 왕자

1990년대 대항해시대 / 라이덴 / 에프-제로 / 원숭이 섬의 비밀 / 고인돌 / 듀크 뉴켐 / 레밍즈 / 뿌요뿌요 / 성검전설 : 파이널 판타지 외전 / 소닉 더 헤지혹 ⋯ 홈월드

2000년대 결전 / 데이어스 엑스 / 쇼군 : 토탈 워 / 스파이더맨 / 심즈 /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 / 악튜러스 / 진삼국무쌍 / 카운터-스트라이크 / 킹덤 언더 파이어 ⋯ 플랜츠 대 좀비

2010년대 단테스 인페르노 / 드래곤 네스트 / 레드 데드 리뎀션 / 림보 / 마비노기 영웅전 / 메트로 2033 / 슈퍼 미트 보이 / 시티빌 / 앨런 웨이크 / 월드 오브 탱크 ⋯ 이볼브


사전 편찬 작업은 끝나지 않을 것, 웹 사전은 아직

엔씨소프트문화재단과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는 게임사전을 출간한 데서 만족하지 않는다. 이번에 편찬한 걸 시작으로 하여 증개정 작업을 꾸준히 할 생각이다. ‘미흡하다’는 지적은 두팔 벌려 환영한다. 20세기 집마다 한 질씩 꽂아두던 백과사전처럼 게임사전이 한 권씩 꽂히길 기대해 본다. 이재성 전무가 추천한 대로 내 자녀와 소통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게임사전은 당분간 종이사전으로만 판매한다. 게임회사에서 만들었는데 이게 무슨일이냐 싶을 것이다. 가격부터 만만찮으니 말이다. 이재성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전무는 “비영리재단이 아니면 이 가격은 불가능했다”며 “이 책이 몇 권 정도 팔리는지 지켜보고 싶고, 시장 상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출판업을 배려하는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모든 게 공짜가 되는 웹을 거슬러 종이로 나온 게임사전이 얼마나 반향을 일으킬지 기대한다.

정답

1. 지지 (Good Game, GG) : 게임 종료 후 플레이어가 서로 나누는 인사말.

2. 랙 (lag) : 서버와 클라이언트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보 지연 현상.

3.버스 (character towing) : 상대적으로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을 돕는 행위. 

4. 공격대 (raid) : 여러 플레이어가 몹(Mob)을 공략하기 위해 결성하는 일시적 집단.   

5. 강화 (enhancement) : 플레이어가 보유한 아이템, 캐릭터 등을 개조 혹은 변형하여 성능을 발전시키는 행위

6. 던전 (dungeon) : 몹(Mob)이 모여 있는 폐쇄된 공간.

7. 롤백 (roll back) : 데이터베이스에서 오류가 발생할 때, 서버 내 저장된 게임 정보를 특정 시점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

8. 루팅 (looting) : 쓰러진 몬스터로부터 아이템을 획득하는 과정.

9. 몹 (Mobile Object, Mob) :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와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비사용자 캐릭터.

10. 딜 (deal) : 적대 캐릭터나 몬스터에게 대미지를 가하는 행위.

11. 딜러 (dealer) : 높은 공격력으로 파티 내에서 적을 공격하는 것을 담당하는 역할.

12. 탱커 (tanker) : 게임에서 적의 공격을 대신 받아 아군을 보호하는 역할군.

13. 로밍 (roaming) : 몹이 특정 지역을 배회하거나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를 돕기 위해 자신의 공격로를 벗어나는 행위.

14. 네임드 (named) : 개별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강한 몬스터 혹은 유명한 플레이어.

15. 어그로 (aggro) : 몬스터에 대한 위협 수준 혹은 상대방을 도발하는 행위.

16. 캐리 (carry) : 게임을 아군의 승리로 이끌어가는 플레이어 또는 플레이어의 행위.

17. 파티 (party) : 온라인 게임에서 2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는 일시적인 집단. 

18. 버퍼 (buffer) : 파티 플레이 시 상태 강화를 통해 아군의 능력치를 향상시키는 역할군.

19. 물약 (potion) : 캐릭터의 상태를 일시적으로 변화시키는 약물 아이템.

20. 애드 (add) : 플레이어의 의도와 무관하게 몬스터를 도발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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