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 - 시스템이 만든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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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 - 시스템이 만든 아이콘
  • by 박찬용
더기어 연재 'Icon'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제품들의 이야기와 의미를 파헤치는 연재입니다. 우리 시대의 아이콘들을 만나보세요.​

내가 아는 김정철 편집장은 간결한 사람이다. 말이 길지 않다. 전화를 걸면 "여보세요" 대신 "네"만 말한다. 무례하거나 쌀쌀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중하고 유쾌하다. 그 짧은 말로 톤이나 뜻을 전하는 것도 신기하다. 용량이 작아진 구글의 로고와 비슷하다. '아이콘'이라는 모호한 원고의 주제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거의 채팅으로 이야기하는데 주로 이렇다.


"박찬용: XX해서 XX하기 때문에 XX로 하겠습니다." 
"김정철: 네"
"박찬용: XXX해야 해서 XX까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정철: 네"


이번엔 조금 달랐다. 

"박찬용: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 써볼까 해요." 
"김정철: 헉, 아, 그거 네모난 거에 동그란 거 들어있는 거요? 소리는 개판이던데 ㅋㅋ, 아이콘임에는 분명하죠."





나와 원고 이야기를 하면서 물건에 대해 저렇게 길게 말한 건 처음이다.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는 김정철의 의견마저 이끌어내는 문제적인 물건인 것이다. 
방금 보신 김정철의 말은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에 대한 깔끔한 정리이기도 하다. 1)네모난 거에 동그란 거 들어 있다(디자인) 2)소리는 개판이다(성능) 3)아이콘임에는 분명하다(상징성). 즉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는 성능은 별로지만 디자인은 좋아서 아이콘이 되었다.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소리가 안 좋은 스피커가 어떻게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를 말해보려면 무인양품이라는 회사의 특수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인양품의 CD플레이어와 패키지 모델이다. 


무인양품은 전에 말한 다이슨과는 완전히 다르다. 다이슨이 제임스 다이슨이라는 독선적인 천재의 창조물인 반면 무인양품은 철저히 시스템의 산물이다. 다이슨이 강력한 중앙집권제라면 무인양품은 기묘한 관료제다. 다이슨의 디자인이 기술과 섞여 있다면 무인양품의 디자인과 기술은 큰 상관이 없다. 다이슨의 라인업은 할 수 있는 한 단순하지만 무인양품의 라인업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 둘은 각자 잘 살아간다.




물건의 라인업과 기술은 두 회사의 기초적인 차이점이다. 지금까지 출시된 다이슨 제품의 핵심기술은 간단하다. 모터를 이용해 공기를 빨아들이거나 내뿜는 것. 세탁기를 만들다 말긴 했지만 그것도 모터를 돌리는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다이슨은 기술의 디테일을 달리 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지만(지난 회 참조) 생산 단계에서의 근본 기술은 모터를 이용한 회전이라는 한 뿌리 안에 들어 있다.



무인양품의 물건 중 이들이 핵심기술을 보유한 건 몇 개나 될까? 있긴 할까? 그러든 말든 무인양품은 7000개가 넘는 물건을 만들어 팔고 있다. 일본의 무인양품 대형 매장은 그 엄청나게 많은 물건이 모여서 만들어진 무인양품-이즘 이라는 종교의 신전이다. 내가 가본 매장에는 5층 규모의 건물에 무인양품 아이용품, 식품, 옷, 자전거, 냉장고, 가구에 집까지 팔고 있었다. 무인양품이 싼 것도 아니다. <무인양품은 왜 싸지도 않은데 잘 팔리는가>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책까지 나왔다. 이 책에 따르면 무인양품 식품 중 가장 잘 팔리는 건 '소재를 살린 카레, 버터치킨'이다. <더기어>에 나온 브랜드 중 전자제품과 버터치킨이 한 브랜드에 소속되는 건 무인양품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 같다. 가전이 아니어도 한 브랜드 안에서 의식주 전부를 채울 수 있는 대형 브랜드는 무인양품이 거의 유일하다. 이케아에는 옷이 없고 유니클로에는 옷만 있다. 




일본 국내용인 경우가 많지만 무인양품에서 가전제품도 꽤 많이 나온다. 스피커와 커피 머신, 가습기에 냉장고까지 있다. 하지만 무인양품의 모든 가전제품이 한국에 들어온다 해도 이들의 물건이 <더기어>같은 쿨한 기술 매체에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성능이 뛰어난 것도, 값비싼 소재를 쓴 것도 아니며 유구한 전통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스타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것도 아니다. 방금 말은 좀 너그러운 설명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보면 성능은 민망한 수준이고 소재는 싸지 않은 정도이며 전통은 없다고 봐도 되고 디자인 역시 하던 것의 답습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줄여 말하면 무인양품 1/7000인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 이 물건이 팔린다. 더 중요한 것, 소비자는 이 물건의 단점을 알고 있다. 이 스피커의 출력은 2W인데, 인터넷 오픈 마켓을 보면 같은 출력의 스피커는 약 2만원 정도에 살 수 있다. 하지만 이 물건을 결국 살 사람들에게 출력 혹은 같은 출력의 더 싼 물건은 중요하지 않다. 이 물건의 후기는 '좀 비싸지만 샀어요' '성능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샀어요' 같은 것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부터 이 물건을 아이콘이라 부를 만한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음질 안 좋고 비싼 스피커가 왜 팔릴까? 



이유는 간단하다. 디자인이 좋아서. 하지만 이 답도 아직 모자란다. 디자인이 좋다는 건 모호한 개념이고, 세상에는 무인양품 말고도 디자인이 좋은 물건이 많다. 무인양품의 디자인이 어떻게 좋고, 다른 것과 어떻게 다른지까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러므로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를 보려면 결국 이 기계의 모체인 무인양품이라는 회사에게로 눈을 돌려야 한다. 무인양품은 콘셉트로 시작해 의식주 전체에 해당하는 물건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이한 회사다. 무인양품에서 파는물건의 공통점은 큰 변별력이 없다는 것이다. 당장 무인양품 매장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무인양품 수첩, 옷, 가구, 여행가방, 다  예쁘다. 동시에 다 어딘가에 있다. 



무인양품은 보통 물건과 다를 바 없는 그 물건에 무인양품 풍이라 할 만한 디자인을 씌운다. 자전거에 미색을 칠하면 무인양품 자전거가 된다. 수수한 디자인의 옷을 구깃한 소재와 은은한 색으로 마무리하면 무인양품 옷이 된다. 마찬가지로 보통 물건에 '무인양품은 이렇다'는 콘셉트를 씌우면 무인양품이 된다. 이거야말로 무인양품의 핵심 역량이다. 콘셉트의 무한한 확장. 항공사와 비슷하다. 항공 서비스라는 건 전 세계의 어느 항공사나 몇 시간 앉아 있으면 하늘을 날아 다른 나라에 간다는 것에선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동일한 효용 안에서 차이를 만들기 위해 항공사들은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패션 디자이너에게 승무원 유니폼 디자인을 의뢰하거나 영화평론가에게 기내 영화 선정을 맡긴다. 침대같은 좌석을 제공하거나 아예 침대를 깔아주기도 한다. 서비스의 본질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무인양품의 스피커도 이 맥락 위에 있다. 출력이나 소재, 가격대 성능비는 어떤 물건을 고를 때 중요한 변수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변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물건의 스펙 같은 건 상관 없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수도 있다. 관점에 따라 그것도 정답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라면 음악만 나오면 되고, 방에 둘 거니까 크기가 적당하고 디자인이 예뻤으면 좋겠고, 가격도 적당하면 살 만하다는 결론을 낼 사람이 세상에는 무척 많다. 그런 사람들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소비자다.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읽은 결과물이다.  



무인양품이 계속 멋있게만 커온 건 아니다. 무인양품은 1980년 일본의 슈퍼마켓 체인인 세이유의 한 브랜드로 출발했다. '온 세상이 브랜드를 지향하던 시대에, 안티 세존(그룹사)으로서 노브랜드의 자사 상품을 개발한다는 발상에서 태어났'다. 무인양품의 모회사인 양품계획 회장 마츠이 타다미츠가 쓴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에서 회고한 말이다. 처음에야 잘 됐지만 마츠이 회장이 왔을 때 무인양품의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책 제목에 쓴 것처럼 구조를 바꾸면서 성공 궤도로 진입했다고 한다. 그 구조란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는 구조' '경험과 감을 축적하는 구조' '낭비를 철저히 줄이는 구조'다. 반면 앞서 말한 <무인양품은 왜 싸지도 않은데 잘 팔리는가>의 저자 에가미 다카오는 '무인양품이 성공한 최대 요인을 '콘셉트'라고 확신한다.' 구조와 콘셉트, 누구 말이 맞는 걸까.

둘 다 맞다. 실례 무릅쓰고 모호한 이야기를 좀 하면 무인양품은 구조화한 콘셉트의 집합체다. 혹은 디자인 콘셉트 수준까지 구조의 수준을 끌어 올린 회사다. 다이슨과 무인양품에서 찾을 수 있는 의외의 공통점은 보통 회사가 합치려 하지 않는, 혹은 합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영역을 붙였다는 것이다. 다이슨이 기술과 디자인을 합쳤다면 무인양품은 구조와 콘셉트, 즉 감각을 합쳤다.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에 좋은 예가 나온다. 이 책에 따르면 무인양품에는 '무지그램'이라는 매뉴얼이 있다. 이 매뉴얼은 경영, 상품 개발, 매장 디스플레이와 접객에 이르는 모든 일의 노하우가 기록되어 있으며 분량은 2천 페이지에 달한다고 한다(어째 경영의 아라비안 나이트같은 느낌이다). 뭐 그거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여기서 보여주는 매뉴얼의 일부가 마네킹에 옷을 입히는 방법이다. 센스와 경험이 필요한 일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을 한 페이지의 매뉴얼에 담았다고 한다. 다이슨처럼 연구개발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처럼 콘셉트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까지 친절하게 매뉴얼로 정리하는 회사도 거의 없다. 더구나 이 매뉴얼은 월 단위로 계속 경신된다. 무인양품의 온갖 콘셉트가 '무지그램'으로 정리된 후 그 매뉴얼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계속 신진대사를 진행시킨다.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 역시 그 매뉴얼의 정신에서 벗어나지 않는 물건이다. 

성공이라는 하나의 결과를 위한 해답 도출 과정의 수는 굉장히 많다. 축구의 공격수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골을 넣는다. 토마스 뮬러나 필리포 인자기처럼 넣을 수도 있고 디디에 드로그바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처럼 넣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할 수 있는 한 많이 넣는 것이다. 다만 입증된 하나의 정답을 다른 곳에서 따라할 수는 없다.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같은 걸 또 만들려면 무인양품과는 다른 방식으로 매력을 만들어내는 콘셉트부터 만들고 키워야 한다. 

아이콘이 되는 방법도 무한하다. 연주 실력과 시대의 밴드가 되는 것에 100%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기술적으로 별 건 아니지만 개념적으로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시대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무인양품 블루투스 스피커에는 아주 강한 콘셉트와 연약한 스피커 유닛이 들어 있다. 이렇게 아이콘이 될 수도 있다. 


글 : 박찬용, 편집 : 김정철 - 이 글은 컬럼니스트의 의견으로 더기어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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