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얇은 HP 노트북 '스펙터' 핸즈온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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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얇은 HP 노트북 '스펙터' 핸즈온 리뷰
  • by 최호섭
HP 노트북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계신가요. 한 마디로 모든 제품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튼튼하지만 그만큼 두껍고 무겁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얇고 가벼운 노트북을 내놓으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기억을 남긴 제품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 HP가 다시 얇고 가벼운 노트북들을 내놓았습니다. 하나는 HP가 ‘세상에서 가장 얇다’고 밝힌 ‘스펙터(Spertre)’고 다른 하나는 기업용 제품인 ‘엘리트북 폴리오(Elitebook Folio)’입니다.



HP의 얇은 노트북 딜레마

스펙터는 이미 지난 주에 소개됐지요. 이 노트북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두께입니다. 10.4mm로 AAA 건전지 정도에 불과합니다. 얇은 노트북의 대명사인 12인치 맥북이 13.1mm이고, 근래 가벼운 무게로 시장을 들썩이게 한 그램15가 17mm입니다. 13.3인치 디스플레이에 1.11kg으로 무게도 가벼운 편입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1kg 이내 노트북들이 인기이긴 하지만 1.11kg도 무겁다고 할 만한 정도는 아닙니다.

앞에서 HP의 노트북이 두껍고 무겁다고 한 이유를 잠깐 돌아 볼까요. 과거 HP 임원들과 인터뷰때도 이 질문은 종종 나오곤 했습니다. HP는 보통 노트북을 설계할 때 강성에 대한 부분을 우선 순위에 둡니다. 이를 잘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프레임에 금속이 많이 들어가고, 두꺼워집니다. 튼튼하긴 하지만 무게가 따라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들이 어떤 노트북은 원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요.

어쨌든 HP는 기본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얇은 노트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쉽지 않았지요.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강성을 포기하거나, 비싼 소재를 쓰면 됩니다. 맥북에 쓰는 유니바디 설계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접합부를 최대한 줄이고 금형을 한 번에 찍어내기 때문에 생각보다 강한 편입니다. 대신 꽤 비쌉니다. HP도 스펙터를 통해 소재에 접근합니다. 알루미늄과 카본 소재를 이용해서 적절한 무게를 잡아냈습니다. 가벼우면서 강도를 유지하려면 가장 먼저 이 두 가지 소재가 떠오르긴 합니다. 가격을 낮추고 싶었을텐데 이만하면 고집도 대단하긴 합니다.

대부분의 소재는 알루미늄입니다. 그래서 얇지만 디스플레이가 덜렁거린다거나 전체적으로 흐느적거리는 느낌 없이 단단합니다. 탄소섬유는 상대적으로 충격에 덜 예민한 바닥에 깔았습니다.

디자인적으로 힘을 준 부분은 힌지입니다. HP는 ‘피스톤 힌지’라고 부르는데 얇은 노트북에 힌지가 도드라져 보입니다. 황금색 느낌이 강한데 이 부분에 구리를 덧씌웠습니다. 힌지는 안쪽에 숨어 있다가 진짜 문의 ‘경첩’처럼 튀어 나옵니다. 사실 최근 노트북들이 디자인에 특색을 내기가 어려워지면서 힌지 부분에서 멋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스펙터도 그렇습니다.


얇게 만들긴 했는데...

제품 발표는 화려하게 했지만 어떻게 두께를 줄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HP가 강조한 부분은 배터리였습니다. 얇게 만들기 위해 배터리 자체를 얇게 했습니다. 대신 두 부분으로 쪼개서 펼치는 방식으로 노트북 두께를 줄였습니다. 배터리는 9.5시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스펙터를 그냥 흔한 얇은 노트북으로만 보기 어려운 게, 대개 이 정도 두께의 제품들이 코어M을 쓰는데 스펙터는 코어i5와 코어i7을 씁니다. 물론 저전력 프로세서이고, 6세대 코어 프로세서 자체가 열이 많이 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코어M과 성능 차이는 분명하고, 무엇보다 이 프로세서는 냉각팬이 필요합니다. 외부에서 찬 공기를 끌어들여 프로세서를 식혀서 내보내는 방식의 얇은 쿨러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발표 내용에서 내부 설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는 부분은 안타까웠습니다. 

두께가 얇아지면서 외부와 연결되는 단자는 USB-C만 남았습니다. 이어폰 단자도 못 둘 정도로 얇습니다. 옆에는 아무 것도 없고, 뒷쪽에 USB-C 세 개가 몰려 있습니다. 그 중 두 개는 썬더볼트 단자를 겸합니다. 이 단자로 충전도 하고, 독에 연결해 일반적인 USB 장치나 모니터 등에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어폰 단자도 뒤에 있는데 이건 좀 불편해 보입니다. 키보드 양 옆으로는 뱅앤올룹슨 스피커가 있습니다.


HP는 이 외에도 기업용 노트북인 ‘엘리트북 폴리오’를 함께 꺼내놨습니다. 이 제품은 사실 지난 1월 CES에서 슬쩍 발표했던 제품인데, 이제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엘리트북 폴리오는 12.5인치 디스플레이에 두께 12.4mm, 무게 1kg의 슬림 노트북입니다.

얇게 만들었지만 알루미늄 소재 등으로 강도를 높여서 미 국방성 표준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면 가혹한 환경에서 쓸 수 있는 노트북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일단 엘리트북 폴리오는 팬이 없고, 이 때문에 냉각을 위한 공기가 드나드는 빈틈이 없습니다. 튼튼하기도 합니다. 사실 폴리오만의 특징이라기보다 HP가 엘리트북을 만들 때 최우선적으로 보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프로세서는 코어M이 들어갑니다. 업무용 제품이니 게임이나 고성능보다도 가볍고 배터리 오래가고 튼튼한 제품이 필요한 업무에 맞는 제품입니다.

이 제품이 눈에 띄는 부분은 4k 디스플레이 옵션입니다. 12.5인치 화면에 3840x2160 해상도를 내고, 어도비RGB 색의 95%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화면이 180도로 넘어가는 것도 눈에 띕니다. 이 제품 역시 배터리는 9.5시간 동안 쓸 수 있습니다.


오래 돌아 온 슬림 노트북, HP의 변화일까

두 제품을 보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HP의 노트북은 여전히 잘 팔립니다. 1등은 레노버에게 내주긴 했지만 기업용 노트북 기준으로는 여전히 HP가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매력이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는 PC를 많이 파는 레노버나 델 같은 회사들에서 더 도드라지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나눠주는 노트북'이 '꼭 좋은 노트북'과 연결되는 건 아닙니다.

이해 못하는 부분은 아닙니다. 가격과 성능 중심의 시장 상황에서는 눈에 띄는 제품을 만들기가 만만치 않았지요. 한동안 노트북 시장이 재미없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특히 많은 고객을 잡겠다는 HP의 전략은 제품을 밋밋해지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근래 노트북의 디자인은 제조사의 역량보다도 인텔의 플랫폼이 끼치는 영향이 더 큽니다. 그러면서 많은 기업들이 비슷한 제품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시장의 목표 중 하나는 맥북 에어를 타겟으로 하는 ‘얇은 노트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HP가 얇은 노트북에 대응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HP는 2010년 ‘엔비’ 브랜드를 처음 내놓으면서 ‘Thinner than air’라는 메시지를 발표했던 적이 있습니다. 공기보다 얇다는 의미지만 사실 맥북 에어를 겨냥했던 것이지요. 이후에도 HP는 여러 얇은 노트북들을 내놓긴 했는데 그 결과물들은 꽤 신통치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HP는 제품을 만들면서 케이스의 강도를 높이는 것을 자존심처럼 여겼기 때문에 생각처럼 얇고 가볍게 만드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2012년 ‘엔비 스펙터’가 나오면서 그 구도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대체로 HP의 노트북은 튼튼하지만 무겁다는 인상이 남아 있었습니다. 4년이 더 지나 HP는 드디어 그 틀을 깹니다. 그리고 스펙터는 브랜드이자 이름이 됐습니다. 결국 HP가 그 안에서 낼 수 있는 해결책은 소재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알루미늄은 그렇다 쳐도 탄소섬유는 HP에게 낯선 소재입니다. 소니가 바이오에 즐겨 쓰던 소재였지요. 이 소재를 소니만 쓸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스펙터는 HP가 좀 더 제품을 유연하게 보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디자인이 달라진 것도 지켜볼 일입니다. HP는 2005~2007년 사이에 과감한 디자인을 내놓은 바 있는데 경기 침체 이후 디자인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딱 봐도 HP’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좋지만 정체된 느낌을 씻어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스펙터는 따로 HP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분위기가 다릅니다. 맥북 에어, 혹은 서피스 닮은 노트북 천지인 시장에서 눈에 띌 만도 합니다.


어쨌든 스펙터는 가장 얇은 노트북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팬을 없애고 코어M을 쓰는 방식도 아닙니다. 일반 소비자 시장이 원하는 고성능과 저전력, 휴대성 등을 맞추려고 했다는 이야기지요. 흔치 않은 제품입니다. 시간을 두고 써봐야 알겠지만 스펙터의 첫인상은 사진만큼 아주 강렬하진 않았지만 돌아보면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흠잡을 데 없습니다.

꽤 멀리, 오랫동안 돌아서 오긴 했지만 HP도 얇고 가벼운 노트북 시장에 제대로 데뷔했다고 봅니다. 스펙터가 그저 하나로 스쳐 지나가는 제품이 아니라 분리 이후 달라진 HP를 반영하는 제품이길 바라봅니다. 스펙터는 5월에 정식 출시됩니다.


[리뷰전문 유튜브 채널 더기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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