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핸드스프링 '바이저' - LG G5의 모듈식 디자인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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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핸드스프링 '바이저' - LG G5의 모듈식 디자인의 원조
  • by 고다르


MWC 2016이후 최고 관심 스마트폰은 단연 LG의 G5. 그 이유는 배터리가 포함된 분리형 모듈 때문이다. 배터리 부분의 모듈을 바꾸면 새로운 기능이 탄생할 수 있는 아이디어다. 현재 뱅앤올룹슨과 함께 만든 오디오 모듈과 카메라 조작 모듈이 공개된 상태. 
G5가 화제를 끈 이유 중에 하나는 오랜만에 '차별화'를 가진 모델이기 때문이다. LG 개발진들은 삼성과 애플,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중국 스마트폰의 융단폭격을 이겨내기 위해 차별화에 온 힘을 기울였고, 아주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일부에서는 구글의 프로젝트 아라(Ara)를 LG가 재해석했다고 얘기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프로젝트 아라는 IoT 개념이 핵심이지 G5의 모듈 디자인은 좀 더 레트로적인 아이디어의 변용에 가깝다. 그래서 이 결과물을 보자마자 더기어의 최호섭 기자는 옛날에 어떤 기기를 떠올렸고, 김정철 편집장은 어서 내게 원고를 안 쓰냐고 호통을 쳤고, 나는 자료를 찾고 있었다. 
G5의 기본적 아이디어는 15년 전에 탄생했고, 우리 같은 하드웨어 오덕들은 열광했었다. 바로 핸드스프링(Handspring)의 바이저(Visor)다.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G5처럼 모듈을 교체하는 방식의 PDA다. 다른 것이 있다면 모듈을 상단에서 뽑아낸다는 것 정도.
스마트폰이란 단어조차 없던 1990년대 말, 지금 같은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일정 관리와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등의 PIMS 기능을 중점으로 하는 PDA란 물건이 있었다. 당시 이 시장의 강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HP, 그리고 팜(Palm)이었다. 그 중에서 팜은 하드웨어는 다소 부족했지만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긴 배터리 수명으로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팜의 하드웨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핸드스프링은 1998년 팜의 일부 직원들이 나와 차린 회사다. 팜은 원래 US로보틱스의 사내 벤처였는데, 팜 파일럿의 성공으로 회사의 가치가 높아지자 네트워크 관련 사업을 하던 3Com에 매각되었다. 이 과정에서 팜 파일럿을 만든 핵심인력들이 나와 핸드스프링을 차렸다. 그리고 핸드스프링은 바이저 시리즈를 만든다. 




바이저가 시장에 등장한 것은 1999년 9월. 이 제품의 핵심은 스프링보드(SpringBoard)라 불리는 하드웨어 모듈이다. 사실 모듈이라기 보다는 '슬롯'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여기에는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구동을 위한 드라이버까지 함께 들어있었다.그래서 초보자도 슬롯만 꽂으면 바로 해당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당연히 어떤 슬롯을 꽂느냐에 따라 제품 기능은 완전히 바뀌었다. 초기에는 골프게임, 확장 메모리, 백업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 60가지가 넘는 다양한 슬롯이 등장했다. 재미있는 것은 바이저의 OS는 팜OS를 최적화시켜 사용했다는 사실. 그들의 최적화 실력이 좋았는지, 기존의 팜OS에 비해 빠르게 작동했으며 소프트웨적인 불편함도 빠르게 개선했다. 어쩌면 바이저를 만든 이들은 팜의 폐쇄적인 OS정책에 대한 반감 때문에 핸드스프링을 만든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노트북에 달린 PCMCIA 규격에는 다양한 기능의 슬롯을 꽂아 기능을 추가할 수 있었다. 

그럼 이런 슬롯 아이디어는 바이저가 최초였을까? 그럴리 없다. 옛날 노트북들은 기능을 추가하기 어려우므로 PCMCIA슬롯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여기에 USB포트를 넣거나 무선랜 포트, 또는 메모리카드 슬롯을 넣으면 해당 기능으로 쓸 수 있었다. 이 개념의 근본은 콘솔 게임의 게임 카트리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다. 

 

모듈에 따라 확장되는 기능





초창기 바이저는 기능을 보조하는 역할이었지만 이후에는 GPS + 내비게이션 모듈, MP3 재생 + 전자책 + 포토앨범 모듈, 디지털카메라 모듈도 만들어졌다. 꽤 재미있는 모듈도 있었는데 진동알람과 플래시메모리를 꽂을 수 있는 모듈(CF카드나 스마트미디어, 소니의 메모리스틱도 지원했다)이나 적외선 만능 리모컨 모듈과 같은 것도 있었다. 또한 고음질 MP3 재생 모듈이나 5개 국어 번역 프로그램도 있었다. 또한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 모듈(이건 전원 연결까지 필요한 불편함이 있었지만)까지 등장했다. 또한 무선 데이터 통신을 위한 폰 모듈이 등장하면서 기기는 날개를 달았다. 



카메라 모듈을 달면 카메라폰처럼 쓸 수 있었다. 무려 15년전 얘기다!



무선랜을 달면 무선통신도 가능했다!


지금은 모두 스마트폰의 앱으로 구현되는 기능이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는 새로운 모듈 출시 소식에 사용자들은 열광했다. 게다가 디오펜을 설치하면 영문으로 표시되던 내용이 모두 한글로 표시되는 범용성도 돋보였다. 바이저는 2MB 램이 들어있는 Solo와 8MB 램이 적용된 바이저 디럭스를 시작으로, 2000년 10월에는 컬러화면을 붙인 바이저 프리즘과 성능 개선 모델인 바이저 플래티넘이 출시되었다. 2001년 3월에는 두께를 줄인 바이저 엣지를, 같은 해 9월에는 16MB의 램이 들어있는 바이저 프로를 꾸준히 출시했다.  


 

LG와 바이저의 관계


바이저가 국내 수입된 시기는 2001년. 바이저 디럭스가 34만 9천원, 바이저 프리즘과 엣지는 62만 9천원의 가격이었다. 물론 (당연히) 모듈도 함께 들어왔는데 보통 개당 7~8만원의 가격대였다. 물론 보조금 따위는 없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PDA 폰으로 최초의 컬러 액정을 탑재한 제품은 바로 핸드스프링의 바이저 프리즘이었으며, 국내 수입시 폰 모듈은 019 번호를 사용했던 'LGT' 전용이었다. 문제의 LG가 등장했다! 이 폰 모듈을 꽂으면 전화는 물론이고 인터넷 접속이 가능했다. LG는 1990년대부터 이미 독자적인 PDA를 개발하고 있었고, 당연히 바이저의 아이디어를 메모해 뒀을 것이다. 언젠가 쓰여질 날을 기대하며. 그게 G5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물론 확신할 수는 없다. 만약 LG 개발자들이 이 글을 본다면 답을 달아주기 바란다. 

 


G5의 미래는 '트레오'일까?


바이저가 탄생한 계기는 PDA의 치열한 경쟁속에서 '차별화'를 이루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들은 그 당시 하드웨어 설계 기술의 한계를 슬롯식 카트리지로 멋지게 극복했다. 판매도 괜찮았고, 마니아들의 지지도 있었다. 그러나 하드웨어 설계 기술이 더 높아지자 이후 제품은 슬롯식 디자인을 버린 제품을 출시했다. 트레오(Treo)라는 PDA다. 연식이 좀 있다면 기억할 팜의 트레오가 바로 이 트레오다. 팜은 트레오에 눈독을 들이다 2003년 결국 핸드스프링을 인수해 버렸다. 하지만 이후 PDA의 시대는 끝나고 스마트폰의 시대가 왔다. 팜은 스마트폰 OS중 가장 혁신적이란 평가를 받는 WebOS를 개발했지만, 결국 HP에 인수되고 말았다. 현재 WebOS는 LG의 스마트 TV에 사용되고 있다. LG와 바이저의 관계가 또 나타난다. 

앞서 말했듯이 기술과 개념은 돌고 돈다. 차별화가 필요하면 과거를 돌이켜 보면 된다. 
그럼 문제 하나. 핸드스프링이 모듈 디자인을 버렸듯이 LG도 언젠가는 모듈 디자인을 버릴까? 그건 모르겠다.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로또 예측만큼 어려운 거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항상 과거의 재미있었던 아이디어를 끄집어 내주는 LG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렇게 또 하나의 '레트로' 원고를 채울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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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르 maryj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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