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 노인과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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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 노인과 기술
  • by 박찬용
루스(다이앤 키튼)와 알렉스(모건 프리먼) 부부는 브루클린의 한 아파트에 40년 가까이 살고 있다. 그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늙은 알렉스가 그 아파트 계단을 오르려니 무릎이 부실하다. 둘은 집을 팔아보려 한다. 지금 상영중인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은 이 설정에서 시작한다.  



루스는 은퇴한 교사고, 알렉스는 화가다. 발달된 현실 감각이 꼭 필요한 직업은 아니다. 물론 세상에는 대단히 현실 감각이 좋은 교사와 화가도 많겠지만 이 둘은 옛날 사람이다. 집을 파는 일은 현실 중의 현실이다. 둘같은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영화를 움직이는 태엽같은 동력은 자극과 반응이다. 집을 팔아야 한다는 현실적 자극에 반응하는 두 노인의 반응. 

더기어니까 테크 이야기를 해야겠지. 어차피 테크 이야기 하려고 지금까지 말한 거다. 미국 영화는 테크 제품을 영리하게 사용한다.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역시 테크 제품이 들어간 몇 가지 장면을 통해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효율적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노부부에게 메일이 온다. 둘은 메일을 확인하려 스마트폰을 보는 게 아니라 거실의 컴퓨터로 간다. 컴퓨터 앞에 앉은 알렉스는 한번에 메일을 확인하지 못한다. 루스가 도와주려 하자 알렉스는 "나도 메일 확인할 줄 안다" 며 앙탈을 부린다. 신기술 앞에 선 노인의 클리셰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장면은 노부부의 아이맥 G4로 완성된다.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은 미국에서 2014년 말에 나왔다. 해바라기 모양으로 유명한 아이맥 G4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생산됐다. 루스와 알렉스 부부가 아이맥 G4의 마지막 공장 출하 물량을 산 거라 해도 10년 이상 된 물건이다. 아이맥 G4를 안다면 이 장면만 보고도 둘의 캐릭터를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은 10년 이상 된 PC를 집에 두고 살아도 일상에 무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등장인물의 휴대전화도 캐릭터를 드러내는 디테일이다. 알렉스는 폴더형 피처폰을 쓴다. 메일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릴 정도로 컴퓨터에 친숙하지 않다는 에피소드와도 일관성을 이룬다. 루스는 아이폰을 쓰긴 하는데 전화만 받으니까 딱히 다를 건 없다. 집 파는 이야기인 만큼 이 영화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주요 조연이다. 릴리(신시아 닉슨)는 쿼티 키보드가 달린 블랙베리를 쓴다.  



나는 셋의 전화기 역시 정교하게 설정된 캐릭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알렉스는 새로운 기술에 부정적이다.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왔고 LP로 음악을 튼다. 루스는 변화를 받아들이려 한다. 남편 무릎이 불편하니까 집을 팔고 편한 곳으로 가자고 한 것부터가 루스의 제안이다. 릴리는 변한 세상의 완벽한 일부다. 그녀는 거의 전화기를 들고 등장한다. 의사소통의 속도만큼 부동산 거래도 빨라진다. 전화 몇 통에 몇 만 달러가 오르락내리락한다. 부동산 중개업자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메일도 편하게 보내고 배터리 교체도 후딱 할 수 있는 블랙베리가 좋은 선택일 것 같다. 셋은 각자의 방식으로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살아간다. 

대도시에는 스크린이 너무 많다. 온갖 스크린을 통해 전파되는 영화 속 가상의 실시간 뉴스는 줄거리의 중요한 변수다. 노부부는 택시 뒷자리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그 뉴스를 처음 접한다. 뉴스는 불쾌한 냄새처럼 계속 퍼진다. 수퍼마켓의 작은 TV, 노부부 집 거실의 큰 TV, 부동산 중개업자의 노트북 스크린을 통해 뉴스의 줄거리가 지루하게 반복된다. 집을 팔려 마련한 오픈 하우스 행사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소파 앞에 앉아서 멍하니 뉴스만 본다. 비즈니스로의 뉴스는 새로운 게 없어도 누군가 공백을 메꿔야 한다. 알렉스는 뉴스를 보다 "새로운 게 없잖아 Nothing new"라고 중얼거린다.  



알렉스는 대도시의 노인이다. 대도시에는 늘 유행이라는 강풍이 분다. 기술 관련 유행은 특히 빠르게 변한다. 우리의 몸과 정신은 변화라는 바람에 대처하는 일에 조금씩 어려움을 느낀다. 늘 젊은 테크 기술과 달리 우리가 영원히 젊을 수는 없다. 나이가 들면 외국어를 배우기 어려워지는 것처럼 최신 기술을 따라가기도 힘들어진다. 결국 우리는 모두 뒤처진다. 알렉스 집의 거실 속 아이맥 G4처럼.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은 변한 세상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신기술에 부정적인 알렉스를 도시생활의 모범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균형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테크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잘 사는 알렉스의 모습 역시 도시생활의 교훈이 된다. 테크 기술과 노인 사이의 어딘가에 변화와 원리 사이의 미묘한 무게중심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집이 팔렸는지 어떻게 됐는지는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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