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블랙아웃 위기, 또 다시 불거진 콘텐츠와 유통의 권력 '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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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 블랙아웃 위기, 또 다시 불거진 콘텐츠와 유통의 권력 '밀당'
  • by 최호섭
지난 1월 15일, 방송 업계에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벌어졌다. 방송국과 케이블TV 사이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양측은 갖고 있는 가장 큰 무기들까지 꺼내 놓으면서 갈등을 키웠다.
 
케이블TV 업계는 이날 저녁부터 케이블TV를 통해 재전송되는 MBC 방송에서 광고를 빼버리기로 결정했다. MBC는 이에 반발했고, 방통위가 중재에 나서 결국 블랙아웃 사태는 면했다. 하지만 갈등이 해소되진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는 시기만 이달 말로 미뤘을 뿐이다. 그 사이에 또 시청자는 볼모가 됐다.

 

끊이지 않는 방송사와 유통 플랫폼 사이 갈등

방송사와 플랫폼 사업자간의 갈등은 매년, 그리고 모든 플랫폼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 원인 자체는 이제 그리 주목도 받지 못한다. 뻔하기 때문이다. 콘텐츠 이용료를 더 내라는 방송사와 그러지 못하겠다는 케이블TV 사이의 갈등은 늘 형태와 대상만 바뀌었을 뿐 영원히 봉합되지 않을 문제다. 언뜻 보기에는 방송사들이 돈만 밝힌다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꼭 그런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시작은 방송사였다. 지상파 3사는 2016년 1월 1일을 기해 케이블TV에 대해 다시보기 서비스 콘텐츠 공급을 중단했다. 그러니까 케이블TV로는 지상파 방송의 다시보기를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이 갈등은 꽤 오래 이어져 왔다. 지상파는 케이블TV에 재전송료를 더 내고, 다시보기 콘텐츠에 대한 비용도 올릴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케이블TV 업계는 반발할 수밖에 없었고, 협상은 지지부진 미뤄졌다.
 
결국 지상파는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케이블TV 업계는 15% 인상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지상파는 이를 거부한다. 그 사이에 대형 케이블 채널에는 계속 콘텐츠를 공급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케이블TV 업계는 작은 업체들까지 함께 끌고 나가겠다고 밝히면서 결국 1월 1일자로 지상파 다시보기는 끊어진다.
 
그러자 케이블TV는 1월15일부로 MBC의 실시간 방송에서 광고를 가리기로 결정했다. MBC를 차단하는 이유는 이번 협상을 MBC가 주도했기 때문이다. 방송은 그대로 내보내되, 광고 시간에는 다른 콘텐츠를 채우는 이른바 ‘블랙아웃’이다.

 
결국 이날 방통위가 급하게 나서는 바람에 블랙아웃은 막아냈다. 그리고 지상파 다시 보기도 재개됐다. 하지만 갈등은 조금도 풀어지지 않았다. 이달 말로 협상 시한이 연기됐을 뿐이다. 언제 또 다시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시청자는 불안할 따름이다. 아니, 어쩌면 불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게 이 다툼에서 방송사들이 놓치고 있는 무서운 점이다.
 
이번 갈등을 간단하게 보자면 결국 주도권을 누가 가져갈 것이냐를 둔 다툼이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같은 방송 콘텐츠지만 케이블TV 입장에서는 다시보기가 아쉽고, 방송사 입장에서는 케이블TV의 재전송이 아쉽다. 현재 상황은 그야 말로 팽팽한 줄다리기다.
 

콘텐츠 입장, '콘텐츠의 가치'

하지만 이 갈등의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 각자의 ‘불확실한 미래’에 있다. 불안감에서 오는 위기 의식이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는 것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방송사 입장에서는 케이블TV와 IPTV, 모바일 등은 모두 콘텐츠에 기반한 유통 사업이다. 방송사가 제공하는 콘텐츠 없이는 사업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권한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세상의 모든 콘텐츠가 3개 채널을 통해 뿌려졌다. 이제는 케이블TV 채널이 수 백 개고 인터넷을 통한 콘텐츠 제작과 유통도 시작된다. 네이버는 나영석PD와 손잡고 신서유기를 인터넷 전용 콘텐츠로 기획해서 뿌렸고 엄청난 트래픽과 반응을 얻었다. tvN의 응답하라1988은 케이블 콘텐츠지만 20%를 넘기면서 동시간대에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더 이상 방송사가, 지상파가 영상 콘텐츠 권력의 중심에 서 있기 어려운 시대가 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끝은 정해져 있다. 지상파를 직접 수신하는 가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UHD TV에 접어들면 더더욱 전파를 통한 지상파의 자체 콘텐츠 유통은 힘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케이블TV와 IPTV, 그리고 모바일을 통한 방송 유통에 코가 꿰일 수 있다. 채널 번호만 한 자리일 뿐 다른 콘텐츠와 ‘기회’ 면에서는 동등해지게 마련이다. 시청자는 재미만 있다면 종합편성채널이나 인터넷 전용 콘텐츠나 가리지 않는다.
 

케이블TV 입장, '유통의 가치'

케이블TV 입장에서는 방송사는 재전송 없이 사업할 수 없는 채널이다. 기본적으로 방송은 공공재인 전파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지상파' 혹은 '공중파'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방송이 전파를 전국 곳곳에 뿌려지진 않는다. 난청 지역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또한 채널을 확장하기 위해 시청자들은 대부분 케이블TV나 IPTV로 방송을 본다.
 
그러니까 케이블TV 없이는 사실상 지상파는 정상적인 유통이 어려운 상황이다. 4k 해상도를 내는 UHD 시대에 접어들면 전파로 방송을 보는 건 더 어려워진다. 지상파 방송국의 아킬레스는 바로 이 부분이다. 호기롭게 다시보기 서비스의 공급을 중단했지만 시청률을 높이고, 광고를 유통하는 것이 곧 수익인 방송국에게 방송 재전송 차단이나 광고 차단은 치명적이다.
 
케이블TV 입장에서 보면 방송사들의 가장 큰 힘인 ‘전국민이 보는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실제 유통을 쥐고 있는 셈이다. 유통 역시 제작만큼이나 큰 권력이다. 이는 꼭 케이블TV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IPTV나 위성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만들고 뿌릴 수 있는 시대

결국 양측의 싸움은 쉽게 봉합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콘텐츠의 가치는 인정받아야 하고, 유통의 역할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시청자는 멀쩡히 돈 내고 보던 서비스가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고, 없어졌던 서비스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이용자들의 반응은 불편보다도 냉소에 가깝다.

이미 우리는 많은 볼거리를 잃었다. 티빙은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등과 계약을 종료하면서 CJ E&M 계열의 방송만 볼 수 있게 됐다. 크롬캐스트 역시 지상파 콘텐츠를 스트리밍하지 못하는 반쪽 기기로 시작했다. 티빙은 볼거리가 반쪽이 됐지만 자체 콘텐츠로 살 길을 찾아가고 있다. 크롬캐스트는 넷플릭스 등 볼 거리가 늘어나면서 지상파 콘텐츠 부족에 대한 불만은 쑥 들어간 지 오래다.

 
공교롭게도 이번 다툼이 벌어진 주말에는 tvN이 응답하라 1988로 20%를 넘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만들어냈다. 이달 초 넷플릭스는 국내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유튜브나 아프리카TV의 성장도 방송 업계에는 심각한 불안 요소다. 더 이상 사람들이 ‘영상’으로 뭔가를 보기 위해 TV앞에 앉지 않는다.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업계가 더 쥐고 있는 힘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꼭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방송과 얽힌 세계적인 흐름이다. 넷플릭스는 이미 미국의 케이블TV 시장을 박살냈고, 콘텐츠와 케이블TV 업계의 공룡인 HBO는 흐름을 받아들이고 ‘HBO고’로 아예 인터넷을 끌어 안았다.
 
인터넷의 발달은 곧 미디어 산업이 쥐고 있던 힘들을 흩어 놓고 있다. 이 다툼의 끝이 누가 됐든 콘텐츠 소비자들은  점차 관심이 사라질 뿐이다. 그리고 점점 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에 익숙해지고 있다. 볼 콘텐츠는 많고 시간이 없을 뿐이다. 어떤 콘텐츠던 보기 어려우면 안 보면 그만인 게 요즘 콘텐츠 소비 시장이다. 그리고 시청자는 이제 더 이상 볼모가 될 여유가 없다.
[리뷰전문 유튜브 채널 더기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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