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인켈 오디오 카드 - 비운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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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인켈 오디오 카드 - 비운의 혁신
  • by 고다르
최근 CES에서는 '혁신'이라는 단어가 혁신적으로 많이 쓰인다. CES 혁신상 역시 혁신적으로 남발되는 상 중에 하나다. 그런데, 14년전, 그러니까 2002년, 혜성처럼 등장해 CES 2002에서 혁신상을 받은 우리나라의 제품은 좀 달랐다. 그 제품은 정말 혁신적인 요소가 있었고, CES가 행운권처럼 남발하는 혁신상의 타이틀에 걸맞는 몇 안 되는 제품이었다. 바로 인켈의 '오디오 카드'다. 아쉽게도 지금은 비운의 명기 혹은 저주받은 걸작이 되어 버렸지만. 



우선 이 제품의 두께는 5mm다. 물론 현재는 엄청난 기능과 성능의 스마트폰이 이 보다 약간 두꺼운 정도로 나오지만 이 제품의 등장이 14년 전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자. 아이팟 나노와 레이저가 나오긴 전인 이 시절의 전자제품은 두꺼비처럼 두꺼웠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국내 제품 중 CES에서 상을 받은 첫 번째 우리나라 제품이 바로 이 오디오 카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제품은 빛을 보지 못한다. 인켈은 2002년에 CES에서 혁신상을 받고 석달 후인 4월 달에 상장 폐지되어 버린다.

이후 마케팅은 전혀 하지 못한 것은 물론, 2003년 중반이나 되어서야 겨우 제품 판매가 시작되었다. 그후로도 M&A 등으로 인켈은 어수선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회사의 상황 뿐 아니라 제품 자체도 일반인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는 두께 밖에 없었다. 2003년 등장한 MP3 플레이어들의 일반적인 가격은 25만원 정도. 여기에 플래시 메모리의 가격 하락으로 256~512MB 혹은 1GB 까지 저장용량이 늘어났다. 하지만 인켈 오디오 카드의 저장용량은 CES 출시 당시의 스펙인 128MB에 불과했으며, FM라디오나 녹음 기능도 없었다. 또, 컬러 LCD 액정도 아니었으니 소위 가격대 성능비에 있어서는 상당히 불리했다. 다만 편법은 있었다. 128MB 밖에 안되는 용량은 VBR 기술을 이용해 파일을 최대한 압축하면 4~5MB 언저리의 MP3 파일을 약 50개 까지도 구겨 넣을 수 있었다. 음질은 좀 떨어졌지만 말이다.  



사실 이 제품은 2005년 11월 중순 쯤, 어떤 이유에서인지 29,900원란 말도 안된 가격에 풀린 제품을 구매한 것이다. 그 당시 이 제품을 발견한 누군가가 관련 커뮤니티에 이 사실을 알렸고, 창고에 잠자고 있던 제품이 빛을 보게된 것. 당연히 원래 판매가의 1/10도 안되게 풀렸으니 정말 순식간에 완판되었다. 음악 좀 듣는, MP3 플레이어 좀 안다는 사람들은 갑작스런 전설의 귀환을 그렇게 환대했다. 나 역시 두 개를 구입했다.  




파란색은 인켈의 로고가 박힌 IM-3 모델이고, 은색은 중국 수출모델로 'Incom 탁월 V19'다. 이 제품의 음질적 특성은 소프트웨어 디코딩이 아닌 하드웨어 디코딩(이것도 세계 최초)으로 소리를 풀어준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당시 1.2 ~ 1.5v의 AA 배터리를 쓰는 제품과 달리 4.2v의 리튬 폴리머 배터리로 구동되었다. 여타 제품이 1.2 ~ 1.5v에서 20mW로 출력을 짜낼때, 오디오 카드는 높은 전압으로 여유있게 구동 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출력은 6.5mW(당시 제품들은 보통 20mW이상)에 불과했지만 소리의 크기는 비슷했다. 또한 높은 동작 전압으로 출력을 짜내지 않아도 되니, 스펙상 90dB의 신호대 잡음비가 지켜질 확률도 높아진다. 또, 20비트 DAC를 탑재했는 데, 이 정도 스펙의 제품은 그 후 10년간 나타나지 않았을 정도다. 정말 음질만 생각한 제품이었다. 




오디오 카드로 음악을 들으면서 출력이 부족한 적은 없었으며, 당시 MP3 플레이어와는 다른 소리를 들려줬다. 답답하게 들리던 소리들이 시원시원하게 바뀌고, MP3 특유의 날카로운 소리가 상당히 부드러워진다. 또한 같은 파일에서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특히 생략하기 좋은 소리인 하이햇의 소리는 한참이나 더 울리며 이어폰에 상관없이 소리를 들려주는 공간이 그 당시 제품에 비해 꽤나 넓었다. 장점은 딱 여기까지. 




6MB 짜리 파일 전송에 거의 1분이 걸릴 정도니 일단 최악의 전송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여러 개의 파일을 압축모드로 전송하면… 하나 압축해 전송하고, 다시 하나 압축해 전송하는 방식으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25개의 파일을 넣는데 걸리는 시간이 거의 20분이다. 노래를 직접 연주해서 다시 녹음해도 시간이 비슷할 정도다. 게다가 충전 케이블도, 리모컨도 전용이기에 분실하면 대책이 없다. 재미있는 것은 파일 전송 과정에서 EQ를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일반적인 모드에 더해 Voice모드가 있다. 강의나 녹음된 소스에서 깎여나간 대역을 보충해주는 모드다. 그래서 컨트롤러에 구간반복 기능이 붙어 있다.

사진을 보면 유선 리모컨에 스프링이 끼워져 있다. 이건 당시 이 제품을 사용하던 사람들끼리 공유하던 팁으로 모나미 153 볼펜 속의 스프링을 빼서 리모컨 커넥터에 감아주면 케이블과 커넥터 연결 부분이 후어지는 것을 막아 단선을 막아준다. 한번 고장이 나버리면 유선리모컨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생긴 안타까운 팁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오디오카드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었다. 당연히 두 제품 모두 방전 상태. 게다가 'Iincom 탁월 V19'는 충전을 해도 3곡을 들으면 전원이 꺼져버린다. 다행히 인켈 IM-3는 완전 충전하면 아직 6시간 정도(스펙상 8시간 구동)는 간다. 이 두 제품에 집어 넣었던 음악들은 그 당시의 인생 음악들이었는데, 여전히 그 음악들을 듣고 있다. 다만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신해철과 데이빗 보위는 고인이 되어 버렸다. 시간은 지났지만 음악은 지나가지 않았다. 아. 재생시 화이트 노이즈가 들린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 이제 화이트 노이즈가 있어도 잘 들리지 않는다.
나이가 드니 새로운 노래를 듣지 않게 되니 많은 용량이 필요없다. 화이트 노이즈는 잘 느끼지 못하게 됐다. 이제 다시 오디오 카드는 명기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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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르 maryj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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