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왜 하필 에르메스와 손을 잡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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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왜 하필 에르메스와 손을 잡았을까?
  • by 김정철


애플이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와 손잡고 '애플워치 에르메스' 에디션을 내놨다. 그냥 내놓은 게 아니다. 무려 애플이라는 이름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전략까지 썼다. 애플은 에르메스 UI에 애플 이름과 로고를 빼는 것을 허락했고,시계 후면부에 살짝 새겨진 것을 제외하면 완벽한 에르메스 워치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애플 역사상 처음이다. 이는 LG가 프라다와 협업할 당시, 프라다 폰트, 프라다 로고, 프라다 UI, 프라다 시작화면을 제공하면서 LG라는 이름을 지웠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역시 LG는 진정한 이노베이터였다.


 

여성 고객을 공략하기에 좋다.




LG는 그만 놀려야 겠다. 이제 왜 하필 에르메스가 선택됐는지 본격적으로 유추할 시간이다. 애플워치가 고객을 더 늘리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여성 고객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이유도 크다. 팀 쿡 CEO에게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사실 스마트워치는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제안이 아니다. 크고, 비싸고, 예쁘지도 않다. 내가 본 애플워치를 찬 여성은 지금까지 3명 뿐인데, 전부 IT쪽 기자다. IT쪽 기자가 아닌데 차고 있다면 IT기자를 꿈꾸는 여성일게다. 남자들은 애플워치의 액세서리로서의 가치를 크게 생각하지만 여자들에게는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만약 현재 상태의 애플워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녀들의 눈에 들려면 명품 브랜드와 협업이 가장 효과적일 거다.  그 중에서도 브랜드만으로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 있는 것은 구찌, 샤넬, 티파니, 에르메스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가장 독특한 밴드 디자인을 가진 브랜드




애플이 협업을 할 수 있는 명품은 루이비통이나 구찌, 샤넬, 불가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애플워치라는 본체는 이미 정해졌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워치페이스와 밴드 디자인뿐이다. 그럼, 멀리서도 가장 눈에 띄는 밴드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어디일까? 아마도 에르메스일 것이다. 두 바퀴 휘어 감는 '더블스트랩'은 옛날부터 워낙 유명했다.
또 가죽도 잘 다룬다. 그들의 가죽 핸드백의 품질과 가격에 대해서는 모두 소문을 들어봤을 것이다. 에르메스는 180년간 6대에 걸쳐 가죽을 다뤄왔다. 남성잡지 '루엘'의 박찬용 에디터는 "에르메스는 가죽 전문 브랜드다. 게다가 '파르미지아니'라는 고가 시계 브랜드에 가죽 밴드를 납품하고 있다. 애플이 최고의 시계줄을 찾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게 가죽이라면 에르메스가 가장 눈에 띄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가죽을 잘 다루는 브랜드는 많다. 에르메스 외에도 발리와 몽블랑도 그렇다. 다만 몽블랑은 갤럭시 노트의 가죽케이스를 납품하고 있고, 발리는 에르메스보다 시계줄을 못 만들 것이다. 티파니도 좋은 파트너지만 그들이 금속으로 시계줄을 만든다면 에디션 가격을 넘어설 것이다. 


 

애플과 에르메스가 서로 통했다. 




애플이 애플워치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인지는 알 것이다. 무려 1000만원이 넘는 에디션까지 내놨다. 애플은 에디션을 유명인이 차고 파파라치에 찍히기를 기대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유명인들은 대부분 바보지만 에디션을 살 정도로 심각한 바보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애플의 고급화 전략은 한계에 부딪혔다. 돌파구는 최고의 브랜드와의 협업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에르메스는 매출은 비록 루이비통이나 경쟁 브랜드에 비해 떨어진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제작비율이 98%가 넘고, 일일이 수공으로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격과 브랜드 인지도도 최고다. 애플의 파트너로서 손색이 없다.   
에르메스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갤러리아 매거진의 정규영 에디터는 "에르메스는 다른 분야에서는 모두 최고였지만 상대적으로 시계 쪽에서는 그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시계를 만드는 업체 중에서는 에르메스가 가장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 상대가 IT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애플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거다. 

 

중국 시장을 노리기에도 유리하다.




에르메스도, 애플도, 중국은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중국의 부호를 연구하는 후룬(胡潤)연구소의 브랜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중국인이 뽑은 최고의 브랜드는 '에르메스', 2015년은 '애플'이었다. (남성 기준)
현챔피언과 올드챔피언이 손을 잡는다면 중국 시장 공략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이 두 브랜드의 합작품을 150~200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구글의 진출이 막혀 있기 때문에 안드로이드 스마트워치의 진출도 상대적으로 힘들다. (삼성이 기어 S2에 타이젠을 적용한 이유도 중국 시장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경쟁자가 적은 곳에서 미리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기회다. 적극적으로 중국인 입맛에 맞는 제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애플워치 스포츠에 서둘러 골드 버전을 도입한 이유도 비슷한 이유일 거다. 






IT역사를 보면 IT기업이 패션 브랜드나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한 적은 정말 수도 없이 많다. 아르마니, 듀퐁, 돌체앤가바나, 질샌더, 몽클레르, 베르사체, 뱅앤올룹슨 등등. 하지만 성공한 적은 의외로 적다. 한정판을 제외한다면 LG와 프라다가 그나마 눈에 띈다. 비록 마지막에는 처참했지만. 
애플과 에르메스와의 콜라보는 어떨까? 우선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꺼져가던 애플워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또 의미도 괜찮다. 비정상적인 가격의 애플워치 에디션을 대체할 만한 가치가 있으면서도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물론 앞으로도 이런 콜라보는 더 자주 일어날 것 같다. 삼성이 알렉산드로 멘디니와 협업한 것처럼 삼성도 기어 S2의 협업을 늘렸으면 좋겠다. 애플이나 삼성이 만든 시계를 차는 것은 건강염려증 환자나 IT덕후처럼 보이니까. 내가 한가지 제안하자면 기어 S2에 '조너선 아이브' 에디션을 내놓는 것은 어떨까? 두 제품 중에 하나를 고르지 않아도 되니까 잘 팔릴 것 같다.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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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철 jc@thege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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