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점자 스마트 워치를 기다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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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점자 스마트 워치를 기다리는 이유
  • by 정보라
“게임요? 하고 싶어요. 스포츠를 좋아해서 MLB 더쇼, 해보고 싶어요.”

대학교 3학년 박인범 씨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야구 게임을 좋아한다. 그런데 게임을 하지는 못한다. 그는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이다.

[닷 사무실에서 만난 박인범 씨]


평범한 대학생, 인턴이 되다


박인범 씨는 올해 20년 남짓한 인생에서 ‘기념비’적인 날을 맞이했다. 이라는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는데 곧 3개월째가 된다. 닷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 점자 시계를 만든다.

“6월 27일 시작했어요. 저에겐 기념비적인 날이에요. 그래서 날짜까지 기억해요. 시각장애인에게 직무 체험은 생소한 단어 거든요.”

박인범 씨는 아주대학교 사학과 3학년이다. 수능? 치렀다. 전맹인 그도 여느 수험생처럼 수능을 봤다. 시각 장애인의 수능 고시장은 맹학교다. 문제를 볼 수 없으므로 녹음 테이프를 받아서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일명 찍찍이 또는 워크맨으로 문제를 듣고 풀었다. 이러한 제약이 있어서 시각 장애인은 시험 시간을 1.7배 쓴다. 답안 마킹은 직접 하지 않고 시험 감독관이 교무실에서 입력한다. 이 방법이 최선은 아니다. 시각 장애인 수험생이 감독관이 답안 마킹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여하튼 시각 장애인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본다.

공부를 곧잘하는 그에게 주위 사람들은 특수교육을 전공하라고 했다. 그가 장애인이니 장애인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 어떻겠느냐는 나름 그의 처지를 고려한 조언이었다.

“그렇지만 저는 장애를 모르는 사람과 일하고 싶었어요. 비 장애인과요. 장애인과 생활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인식이 왜 그따위냐’고 말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요. 모르니까 인식이 없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이해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고요. 그걸 뭐라고 하는 건 이해가 안 가요. 저는 사람들이 장애를 이해하는 걸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평소 역사를 좋아하여 사학 전공을 선택했다. 당연히 장애인보다 비 장애인이 더 많았다. 그런 만큼 아무렇지 않게 ‘장애인’과 ‘병신’을 누구를 놀리거나 욕으로 쓰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그런 사람과 마주치는 것도 장애인과 비 장애인의 소통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닷에서 시각장애인을 뽑는다기에 지원했다.

[설정 샷이 아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정보 탐색하는 방법을 비 시각장애인은 세세하게 알지 못하므로 닷의 직원들은 박인범 씨에게 웹페이지가 어떤 언어로 쓰였는지 확인하는 방법과 같은 걸 수시로 물어본다. ]


시각장애인을 위한 제품을 테스트하는 시각장애인


박인범 씨는 닷 워치의 제품 테스터이자 마케터다. 시제품을 쓰면서 실 사용자인 시각장애인의 처지에서 코멘트를 한다. 시각장애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피드백이나 문의사항을 정리하고 때로는 직접 답변을 한다.

닷은 닷 워치라는 점자 스마트 워치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닷 워치는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각종 정보를 점자로 옮긴다. 글자를 점자로 바꾸는 일종의 번역기 같은 거다. 문자와 시각 등 간단한 문자 정보를 점자로 바꾼다. 원하면 웹페이지도 문서도 점자로 변환할 수 있으나 그 용도로 쓰기엔 크기가 작다.

닷의 시계알은 둥글다. 가운데 점자를 표현하는 돌기가 솟는 자리가 있고 그 주변은 터치 센서가 깔려 화면에 손을 대면 현재 시각을 점자로 표시한다. 자이로스코프와 가속도 센서가 들어서 만보계 기능도 한다. 돌기의 높이는 0.35mm밖에 안 되어 비 시각장애인은 오돌톨하다는 느낌만 들 뿐이지만, 박인범 씨는 곧바로 읽어낸다.


[박인범 씨가 닷 워치를 사용하는 모습. 시계알을 손끝으로 쓸면서 돌기가 표현하는 점자를 읽는다.]


"스마트폰, 점자로도 쓰고 싶어요"


그런데 의문이 있다. 스마트폰은 화면에 뜨는 글자를 소리내어 읽어주는 보이스오버라는 기능을 기본으로 갖췄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모드도 있다. 굳이 점자 스마트 워치라는 걸 굳이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현재 시각이나 문자 메시지 같은 간단한 내용 확인하려고 30만 원짜리 기기를 사야 하는건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보이스오버 기능을 쓸 땐 이어폰을 껴요. 지하철에서도 길에서도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데 귀마저 막았으니) 위험해요. 계속 귀에 꼽고 다니면 거추장스럽고요.”

박인범 씨는 아이폰의 보이스오버의 읽기 속도를 가장 빠르게로 설정해서 쓴다. 옆에 앉아서 그의 핸드폰이 내는 소리를 들었지만,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한국어인지 외국어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화면마저 꺼두고 쓰니 무얼 하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렇듯 비 시각장애인은 보이스오버가 무엇을 읽는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시각장애인의 처지에선 문자나 지금 내가 스마트폰으로 무얼 하는지 남들이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이어폰을 끼는데 그게 썩 유쾌하지가 않다.

“급한 문자가 올 수 있잖아요. 수업 시간이나 미팅에서요. 그런 자리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게 예의는 아니지만……. 그걸 꺼내고 이어폰을 끼고… 비 시각장애인은 10초면 할 걸 우리는 1분 걸려요”

그랬다. 비 시각장애인은 스마트폰으로 틈틈이 딴 짓을 한다. 시각장애인은 딴짓하면 딱 걸린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있으니 말이다. 시급한 메시지이든 시덥잖은 대화이든, 비 시각장애인은 아무렇지 않게 확인하는 메시지를 시각장애인이 보려면 부산스럽다. 시각을 확인하려고 해도 이어폰을 꼽아야 한다. 정말이지 귀에 딱지가 앉고 진물이 나겠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정보 단말기 '한소네' 모니터가 없는 컴퓨터다. 박인범 씨는 이 기계로 문서 작성을 하고 전공 서적을 읽는다. 흰색 돌기는 출력 장치이고 그 위 큼직한 단추가 입력 장치다. 이 기계는 글을 한 줄씩 표현하는데 글자 외 정보는 표현할 수 없다.]

“애플 워치를 쓰면서 좋았지만, 카톡이 와도 스피커로 들어야 해요. 이어폰이 없으면 시끄러운 곳에선 들을 수가 없죠. 사람 많은 곳에서 애플 워치를 귀에 대는 게 너무 싫어요.”

애플 시리나 삼성전자의 S보이스? 스마트폰에 깔린 음성비서가 시각 장애인에게 도움이 될 거라지만, 정작 시각장애인인 박인범 씨는 창피해서 안 쓴다. “시각장애인 중에 쓰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전 장난칠 때밖에 안 써요. 밖에서 쓰기에 부끄럽고 남들이 비웃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런 기분, 비 시각장애인도 느끼지 않나.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그림도, 책도 표현하는 점자 패드는 언제 나오누


인터뷰를 주선한 닷에 미안한 얘기지만, 점자 스마트 워치는 앞으로 닷 워치 말고도 여러 제품이 나오길 바란다. 시각장애인도 비 시각장애인처럼 재질, 크기, 기능을 골라가며 제품을 쓰면 좋겠다. 당장은 닷 워치 하나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웹에,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온갖 정보를 받아보는 시절이니 닷 워치만으로는 답답하겠다. 비 시각장애인의 상황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기사를 서너자씩 보면서 읽는 것과 같다. 비 시각장애인도 책 읽기용으로 태블릿PC나 전자책 단말기를 사지 않던가. 긴 글을 읽고픈 욕구가 있지 않은지 물으니 박인범 씨, 역시 훌륭한 직원이다. 내후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중인 점자 태블릿 ‘닷 패드’를 언급했다.

“닷 패드가 나오면 무조건 쓰고 싶어요. 그림을 표현하면서 백만 원, 이백만 원대로 나오는 기기가 없었거든요.”

비 시각장애인이 굳이 사지 않아도 될 고화질, 고해상도, 카메라 성능을 따져가며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사듯 시각장애인도 나온 것만으로 감사해 할 게 아니라, 점자 디바이스를 골라가며 사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사진 촬영: 조수현)


[리뷰전문 유튜브 채널 더기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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