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카카오에게 드리는 글 "정부의 의도대로 사드비판글을 삭제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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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와 카카오에게 드리는 글 "정부의 의도대로 사드비판글을 삭제하지 말아주세요."
  • by 정보라
시민단체 9곳이 네이버와 카카오에 8월 24일 공개 편지를 보냈다. 지난 7월과 8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특정 게시물을 삭제하라고 시정 요구한 것을 따르지 말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았다. 기업에게 정부에 반항하라고 대놓고 요구하는 이 편지는 어쩌다 쓰게 된 걸까. 이야기는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7월 8일 국방부는 주한미군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후보지로 선정된 지역의 주민은 배치 반대 운동을 벌였다. 온라인에서는 반대하는 의견과 찬성하는 의견이 오갔다.

[국방부 안내 자료 중]

문제는 반대하는 의견이었다. 경찰은 반대 의견을 담은 게시물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했다. 유해하다는 게 이유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신고를 접수하고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정보'라며 해당 글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삭제 결정을 하고 시정 요구하는 건은 해당 글이 실린 서비스에 통보된다. 시민단체는 이 통보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지 않다며 따르지 말아 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라면 누구나 국가 정책에 대해 비판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위 생각에 동참한 시민단체는 민주언론시민연합, 오픈넷,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NCCK 언론위원회, 미디어기독연대 등 9곳이다. 이들 단체가 보낸 공개 편지의 수신인은, 기업은 네이버와 카카오 두 곳이고 인터넷 기업의 모임인 한국인터넷정책자율정책기구(KISO)와 인터넷기업협회다. 편지를 공개적으로 보내고 수신인에 인터넷 기업 모임을 포함한 건 정부가 인터넷 여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에 힘을 모아 맞서달라는 뜻이다.

KISO는 천안함 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며 삭제하라고 했을 때 ‘이용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며 거부한 일이 있다. 이 결정은 네이버와 카카오가 삭제 요청을 거부하는 뒷배경이 됐다. 시민단체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이번에도 그때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한다. 블로그에 카페에 글을 올릴 때 눈치 보고, 내 글이 언제 잘릴지 모르는 걱정을 하는 현실이 슬프다. 지금은 21세기다.

[플리커 이미지 ©Jennifer Moo CCL_BY_ND (출처표시, 변경 금지)]


아래는 시민단체가 보낸 편지의 전문이다.

<인터넷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 보호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서한>

인터넷 기업들은 이용자의 기본권 보호를 위하여 방심위의 부당한 시정요구를 거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9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경찰과 공조하여 사드의 유해성을 지적한 이용자 게시물을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삭제’ 결정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중대한 국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주장과 비판적인 의견 표명을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는 자의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으로 정부 기관이 일방적으로 삭제 요청하는 것은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에 대한 침해입니다. 또한 이는 심각한 비민주적 행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전에도 방심위는 공적 사안에 대하여 정부측 주장과 다른 의혹을 제기하는 글들을 ‘사회적 혼란 야기’, ‘사회질서 위반’ 등을 이유로 삭제 요구한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러한 인터넷상 표현물에 대한 사실상의 검열은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우리는 인터넷 기업들이 이와 같은 방심위 등 국가기관의 부당한 삭제 요구를 거부하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같은 문제에 대비하기 위하여 방심위 시정요구에 대한 ‘게시물 처리기준’을 확립하여 이용자의 권리 보호에 앞장설 것을 촉구합니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인 데이비드 케이는 올해 발간한 <디지털 시대 표현의 자유와 민간기업>에 대한 보고서에서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민간 기업, 특히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의 역할에 주목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이용자들과 가장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당사자인 인터넷 사업자들이 자칫 국가의 검열과 감시의 대행자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하면서, 민간 기업 역시 자신들의 정책과 사업 방침에 이용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책무를 접목시킬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방심위의 시정요구는 행정처분이긴 하나, 인터넷 사업자들이 이에 그대로 따라야 할 법적 의무는 없습니다. 판례가 시정요구를 행정처분으로 판단한 것은 조치여부를 통보할 의무를 부과하거나 게시글이 삭제되는 경우 게시자의 표현의 자유 등 권리를 제한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지, 시정요구에 법적 강제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게다가 ‘불법’정보가 아닌 ‘유해’정보에 대한 시정요구는, 강제력을 가지고 있는 방통위의 불법정보에 대한 제재명령으로 이어질 염려도 없기 때문에 더욱 인터넷 사업자들의 재량적 판단의 여지가 넓습니다.

이러한 법적인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용자의 합법적 표현물, 나아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욱 강하게 보장되어야 하는 정치적 표현물을 인터넷 사업자들이 삭제한다면, 인터넷 사업자들 역시 서비스 이용자 및 소비자의 권리, 나아가 시민의 중대한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며 이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인터넷 기업들이 이용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지금까지 한 노력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지난 2009년 인터넷 사업자들의 자율 규제 기구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하 ‘KISO’)는 ‘명예훼손성 게시물 처리정책’을 만들어 명예훼손을 명분으로 한 국가기관의 부당한 임시조치 요청을 거부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일부 기업들은 투명성 보고서를 발간하여 국가기관의 이용자 정보 요청이나 게시글 삭제 요청 현황을 공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이용자 정보를 제공해 달라는 수사 기관의 ‘협조 요청’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도 긍정적입니다.

한편, KISO가 지난 2010년 5월부터 12월까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의혹을 제기하는 게시물을 ‘사회 통합 저해’ 등을 이유로 삭제하라는 수차례에 걸친 방심위의 요구에 대하여, 법적 근거와 유해성이 분명하지 않은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정보’ 등과 같은 심의 기준에 근거한 삭제 요구는 이용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 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이를 거부한 선진적인 선례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인터넷 기업들의 노력과 선진적인 사례가 앞으로의 부당한 삭제 요구에 대해서도 이어지기를 촉구합니다. 불법정보가 아닌 한, 인터넷 사업자들이 이용자의 게시물을 삭제할 이유는 없습니다. 만일 정부의 부당한 검열 요구에 순응하여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뒷전으로 밀어 놓는다면, 결국 이용자들은 그와 같은 인터넷 기업들의 관행과 서비스에 분노하고 나아가 이런 기업들을 외면할 것입니다.

우리는 인터넷 기업들이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방심위의 시정요구를 비롯한 정부의 이와 같은 부당한 검열에 대응하는 자체적인 처리기준을 마련할 것을 다시한번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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