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4국 관전평, '인간과 인공지능이 서로를 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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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4국 관전평, '인간과 인공지능이 서로를 이해하다'
  • by 최호섭
3월13일 이세돌 9단이 제 4국에서 드디어 알파고를 이겼습니다. 4시간 넘게 이뤄진 대국에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은 조금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고, 결국 알파고는 돌을 던지면서 패배했습니다.

사뭇 달라진 해설 분위기

 
대국이 벌어진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는 6층 취재 부스가 마련됐습니다. 그리고 이날도 취재진으로 붐볐습니다. 이미 대회의 승패는 가름지어졌고, 일요일이기도 했지만 느슨하게 마음 먹고 갔다가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바둑은 해설이 필요했기 때문에 영문과 우리말로 두 개의 해설 방이 열렸습니다. 저는 당연히 한국어 해설방에 자리를 잡았지요. 4국의 해설은 송태곤 9단과 하호정 4단이 맡았습니다. 이날 분위기는 딱딱하거나 긴장감이 흐르기보다도 조금 편하게 지켜보자는 쪽으로 흘렀습니다. 적당히 농담도 나오고, 대국 외에 이야기도 하면서 대국이 진행됐지요.
 
그런데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인간 대표와 AI 대표의 전쟁으로 이 대국을 바라보긴 했지만 이날 해설을 맡은 두 프로들은 확연히 알파고를 이해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대국 초반에 나온 몇 가지 이야기를 옮겨볼까요?
 
“판후이 2단과 벌인 한 시간짜리 대국에서는 알파고가 이겼지만 초읽기로 대국이 이뤄졌을 때는 알파고가 불리해지곤 했다. 지금 2시간짜리 대국 규칙은 일반 바둑과 비슷하게 하기 위해 잡은 규칙이다.”
 
“알파고의 성격은 전투를 즐기기보다 피해가는 식이지만 막상 붙으면 전투도 잘 한다”
 
“알파고가 흑을 쥐었을 때 더 놀라게 하는 수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이 대회는 일반 바둑 대회처럼 비춰지긴 하지만 사실상 인공지능을 실험하는 튜링 테스트와 비슷합니다. 그 때문에 승패 자체가 누군가에게 영화롭거나, 치욕을 준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구글도 그렇고, 우리에게도 중요한 건 이 인공지능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할 겁니다.


 
이날 해설을 맡은 두 프로는 알파고의 수를 두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두는 수’, ‘공식처럼 두는 수’ 같은 언급은 있었지만 그 공식이 깨지는 것에 대해 흥미롭게 해설하는 게 확실히 바둑계에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더군요. 제가 바둑은 잘 모르지만 행사장 곳곳에서 들리는 바둑계 ‘어르신’들이 나누는 대담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승부가 중요한 게 아닌 진짜 대국이 시작됐다는 것이지요.

 

알파고, 여전히 세지만 다른 모습도 있어


이날 알파고는 여전히 강력했습니다.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중반까지 아주 팽팽한 싸움이 일어났지요. 그리고 이세돌 9단이 중간에 약간 아쉬운 수를 하나 두면서 판도가 알파고에게 넘어가는 듯 했습니다. 이세돌 9단은 여기에서 시간을 아주 오랫동안 쓰면서 어려운 수를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알파고가 엉뚱한 곳에 돌을 둡니다. 79번째 수가 그랬고 87번째 수가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의미 없이 이미 승패가 결정된 곳에 상대의 집을 넓혀주는 수를 두더니 뒤이어 또 전혀 의미 없는 곳에 두면서 판세가 완전히 기울었습니다. 이세돌 9단이 오늘도 질 수 있겠다는 생각과 약간 지루해지는 분위기가 돌던 순간이었는데 갑자기 장내가 술렁거릴 정도로 돌 몇 개에 판도가 뒤집어집니다. 이세돌 9단이 7집 이상 유리하게 뒤집어버린 것이지요. 하호정 4단이 “알파고 서버에 우리나라 사람이 침입했나요?”라고 말해 웃음이 터졌고, 87수 때는 이세돌 9단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때도 알파고가 실수한 것이냐를 두고 해설자들이 판단을 하지 못하더군요. 하지만 이날 이 결정적인 두 번의 수는 ‘악수’로 결론이 났습니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도 트위터에 ‘mistake’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꺼냈습니다. 사람처럼 실수했다기보다는 통계에 바탕을 둔 데이터가 더 강하게 적용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런 부분을 걸러주는 게 머신러닝의 파라미터이고, 또 가치망의 역할인데 결국 치명적인 수가 됐습니다.
 
대국 직후 인터뷰에서 허사비스 CEO는 “알파고가 두는 수는 직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 수가 실수처럼 보이지만 실수일 수도, 묘수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수의 판단은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고, 오늘 그 수들은 실수였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실수와는 다르겠지만 결국 알파고도 완벽한 수만 두는 것은 아니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진짜 재미있는 것 그 뒤의 일입니다. 곧 알파고가 정신을 차립니다. 역시 중반을 넘어가면 알파고는 빈틈이 없어집니다. 승부는 이미 판가름이 났다고 하는데 알파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 이세돌 9단을 압박합니다. 이미 초읽기에 들어간 이세돌 9단은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척척 따라오는 알파고에 작은 실수를 조금씩 하면서 격차가 줄어들더군요. 송태곤 9단이 “터미네이터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이기고 있지만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대국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결국 바둑판은 가득 채워지고, 알파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대국이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두 프로 해설자도 확신을 내리지 못할만큼 알파고의 공격은 날카로웠습니다. ‘손해를 줄여 나가는 수’라고 하더군요. 아마 사람이었다면 심리적으로 흔들려서 진작에 끝났겠지만 인공지능의 강점인 감정 없는 대국은 끝까지 치열했습니다.


 

알파고의 불계, 그리고 OS

 
이제 다들 잘 아시겠지만 알파고는 직접 바둑을 두지 않습니다. 컴퓨터 화면에 수를 띄우면 아자 황 박사가 실제 바둑판에 돌을 놓는 식입니다. 그런데 알파고의 UX는 썩 좋지 않더군요. 돌을 두었다는 신호를 따로 주지 않기 때문에 황 박사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쳐다봅니다. 눈이 다 아플 것 같더군요.
 
심지어 이번 대국까지 한 번도 중간에 화장실을 간다거나 하는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황 박사가 알파고’라는 농담이 다 나올까요.
 
나중에는 저도 알파고의 모니터를 계속해서 보고 있었습니다. 특히 패를 선언하는 순간이 궁금했지요. 알파고는 모니터에 AlphaGo Resign이라는 경고창을 띄우는 것으로 대국을 마무리했습니다. 그 동안 알파고는 운영체제가 따로 공개되진 않았는데 막연히 리눅스라고만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고창으로 적어도 대시보드는 우분투가 아닐까 보고 있습니다. 허사비스에게 이를 질문하고 싶었는데 질문 기회를 얻지 못해서 지금도 안타깝습니다.
 
알파고는 승률을 실시간으로 계산합니다. 허사비스 CEO는 87수 이후 알파고의 승률이 크게 떨어졌다고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승률이 10% 이내로 낮아지면 돌을 던지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알파고의 마지막은 또 약간씩 흐트러지는 모습이라는 게 해설자들의 설명이었습니다. 냉정하게 두기보다 승률이 떨어지면서 스스로의 실력보다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는 수를 주로 둔다는 겁니다. 승패 상황에 따라 움직임이 또 달라진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흥분보다 인공지능의 의미 살피기

 
끝난 뒤 행사장은 묘하게 축제 분위기가 됐습니다. 왠만해서는 박수도 잘 치지 않는 우리나라 기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묘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세돌 9단도 눈물을 글썽이며 승리에 기뻐했습니다. 확실히 알파고는 이번 대국에서 기존과 다른 혼란스러운 수를 몇 번 두었고, 그건 마치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인공지능이 주인공의 꾀에 말려 들어가 스스로 자멸하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이날 대국으로 딥마인드는 더 큰 것을 얻었을 겁니다. 승패를 가름지을 만한 큰 실수가 나왔고, 그 상황은 이제까지 없던 중요한 데이터가 됩니다. 허사비스 CEO는 “알파고의 약점, 한계를 봤고, 단점을 알게 됐다”며 “이 데이터를 갖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세돌 9단도 두 가지를 읽었다고 합니다. 의외의 수가 들어갔을 때 알파고가 판단 내리는 데 혼란스러워한다는 점과, 흑돌을 쥐었을 때 어려워한다는 것 두 가지를 약점으로 꼽았습니다.
 
바둑계에서는 아직 인간이 실력으로 인공지능과 맞설 수 있다는 드라마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인공지능, 그리고 머신러닝에 대해서 다시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며칠 대국이 벌어지면서 분위기가 휙휙 바뀌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문제 없이 이길 것이라고 봤다가, 첫 패 이후 분위기가 침울해졌고, 2패 뒤에는 규칙의 부당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3패 뒤에는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감이 지배했지요. 4국에서 이세돌 9단이 이긴 뒤에는 또 다시 ‘그래도 사람이 강하다’고 분위기가 흐릅니다.



만약 알파고가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머신러닝 기술이고, 대국 상대가 중국 챔피언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봤을까요? 이번 대국은 승패가 중요한 국가대표 대항전도 아니고, 인공지능의 무서움을 보이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아마 우리는 직업이 사라질까 하는 고민,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한다는 걱정보다 이게 어떻게 쓰일지에 대해 조금은 더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까요?

대국 직에 열린 인터뷰에도 일본 NHK의 기자가 "의료 분야에 쓰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도 실수가 생기면 어쩌나"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알파고를 통해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스타크래프트같은 다음 게임 상대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산업이 아닐까요.

바둑계도 부쩍 알파고를 통해 바둑을 새로 배운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일찌기 알파고와 바둑을 두었던 판후이 2단은 600위대 순위에서 알파고 대국 이후 300위대로 올라섰다고 하지요. 저는 바둑도 모르고 머신러닝도 낯설기만 합니다. 섣불리 판단하고 걱정하기보다는 이제 현실로 다가오는 새 도구에 대해 받아들이고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둑만큼 기사 역시 머신러닝의 주요 테스트 수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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