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는 정말 실수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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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는 정말 실수한 걸까?
  • by 최호섭
3월9일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은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세돌 9단은 대국 내내 적잖이 놀란 것 같다는 게 현장의 반응입니다. 어쨌든 첫 대국은 알파고의 역사적인 승리로 끝났고, 세상을 발칵 뒤집혔지요.
 
일단 이 대국을 보는 관점은 어떠셨나요? 저는 인공지능이 사람에게 맥없이 밀리지 않을 만큼 강하면서도 사람의 능력이 컴퓨터에 지지 않는, 아슬아슬한 그 선 정도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알파고는 강력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이세돌 9단을 넘지못했다'는 게 아마 기대했던 헤드라인이 될 듯 합니다.

 
저는 이날 대국장에 직접 참석하진 못했고, 바둑도 잘 두지 못합니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알파고 이야기를 나눴고, 스마트폰 메신저, SNS를 통해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됐습니다.
 
대국 중반까지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알파고가 꽤나 수를 잘 두지만 이세돌 9단이 팽팽한 접전 속에서 우세하게 대국을 끌어가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딱 기대했던 흐름이었습니다. 게다가 '알파고가 실수를 했다'는 소식까지 들렸습니다. 얼핏 느끼기에 이 때까지 우리 주변의 분위기는 컴퓨터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에 안도하는 듯 했습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하나는 이세돌 9단이 강하게 밀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약간 우세하다는 건 후반에 불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실수는 과연 실수인가라는 것입니다.
 


알파고는 실수한 걸까, 신의 한 수를 둔 걸까

 
알파고는 과연 실수를 한 것일까요? 대국이 끝나고 나니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습니다. 그 수가 실수가 아니라 고도로 계산된 수였다는 겁니다. 해석은 분분합니다. 엄청난 수였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사람을 흔들기 위해서 둔 심리전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먼저 알파고의 작동 원리를 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이니, 머신러닝이니, 신경망이니 하는 복잡한 말들이 나오는데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원칙적인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어디에 둘지를 판단하고, 그 자리에 두면 이길 것이냐만 보는 겁니다. 사람이 바둑 둘 때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죠.
 
머신러닝을 짜는 방법은 보통 그렇습니다. 컴퓨터에게 기본적인 규칙 한 가지씩을 줍니다. 데이터를 받으면 주어진 역할만 딱 하는 것이지요. 그걸 보통 '모델'이라고 합니다. 설계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각각의 역할을 하는 모델을 여러개 연결합니다. 데이터는 이 모델들을 거쳐가면서 의미를 찾아갑니다. 그게 마치 사람의 신경망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실제로도 신경망, 뉴런 같은 말을 쓰기도 합니다. 사실 따져보면 사람의 신경망과는 좀 달라보이고, 시퀀서에 가깝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알파고에는 두 개의 신경망이 들어갑니다. '정책망'과 '가치망'입니다. 정책망은 다음에 어디에 둘 것인가를 판단합니다. 수를 내다보는 역할을 하지요. 가치망은 그 수가 잘 둔 수인가, 이길 수 있는 수인가에 대한 가치를 매깁니다. 참 이름도 잘 지었습니다.

 
그리고 알파고는 대국이 진행되는 시간 내내 실시간으로 정책망과 가치망을 통해서 판도를 읽어냅니다. 목적도 단순합니다. '이기는 수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게 단순하지만 알파고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기에 정책적으로나 가치적으로나 판단을 내리는 기준도 사람과 비슷합니다. '경험'입니다. 알파고는 벌써 100만 번 이상의 대국 정보를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규칙에 데이터가 쌓이면 가치가 만들어진다는 게 인공지능, 그 중에서도 딥러닝과 머신러닝의 핵심입니다.
 
알파고가 무서워지는 건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바둑판 위에 올라오는 모든 수를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바둑의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해서 3천년 동안 같은 대국이 한번도 없었다고 하지요. 그 어마어마한 수를 알파고는 계속 계산합니다. 바둑 고수는 20수, 30수씩 내다 본다고 하는데, 알파고는 게임이 끝나는 결과까지 계속 내다봅니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연산 능력이 필요합니다. 알파고의 실력은 이 컴퓨터의 규모를 얼마나 크게 할 것이냐, 그리고 연산 시간을 얼마나 줄 것이냐에 철저하게 달려 있습니다.
 
대국이 진행되는 순간에도 알파고는 끊임없이 계산하고, 그때 당시에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수를 둡니다. '실수'라고 했던 그 수가 진짜 실수인지는 모릅니다. 해석이 분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겠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컴퓨터가 사람의 페이스를 흔들어놓기 위해 엉뚱한 수를 둔 건 아닙니다. 통계에 의해서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두는 바둑 흐름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가장 좋은 수라고 판단한 곳에 돌을 내려 놓은 것이지요.
 
알파고의 '실수'라는 판단은 사람 입장에서 내린 결론이고, 다시 결과론적으로 승부가 갈린 뒤에로 '승부수' 또 다시 다른 판단이 내려집니다. 알파고는 최선을 다한 수 였고, 그 결과는 사람들이 그 동안 두어 온 바둑의 통계대로 움직인 겁니다.
 
그 안에서 사실 사람은 흔들릴 수밖에 없지요. 이세돌 9단도 '이런 수를 두나?'라고 판단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어쩌면 사람과 컴퓨터가 두는 바둑의 가장 큰 차이일 겁니다. 알파고는 설령 그 수가 실수였을지라도 이미 지나간 수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음 할 일은 다음 최선의 수를 두는 것입니다. 그러니 알파고가 사람을 쥐고 흔든다는 불안은 갖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경우의 수, 분석의 양이 곧 알파고의 실력

 
두 번째, 후반으로 갈수록 알파고가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건 역시 컴퓨터이기 때문입니다. 알파고의 정책망과 가치망은 쉴새 없이 바둑을 끝까지 두어 봅니다. 그게 처음에는 우주의 원자 수만큼 많은 경우의 수가 나오기 때문에 제 아무리 알파고라고 해도 정확도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핵심은 쓸 데 없는 계산을 제외하는 예외 처리입니다.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예외 처리하는 데에 공을 들였고, 그만큼 정확한 연산을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래도 초반은 아무래도 계산해야 할 수가 많습니다. '실수'라고 했던 수도 어쩌면 잘못 연산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듭니다. 철저하게 끝까지 계산된 냉정한 수가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알파고를 이기기 위해서는 초반에 강력하게 밀어부쳐야 할 겁니다.

 
게다가 사람은 흐름에 따라 긴장이 풀리기도 하고, 심리가 무너지기도 하지만 알파고는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실수가 됐든, 실력이 됐든, 지나간 수는 잊고 다음에 둘 수만 봅니다. 흐름을 이해하지만 흐름 때문에 실력이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기계의 무서운 점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가 머신러닝에 기대하는 부분도 그런 겁니다. 예외 없이 정확한 결과를 뽑아내는 것이지요. 벌써부터 알파고에 대한 우려로 '인간이 컴퓨터에 지배된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한다'라고 하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알파고는 바둑을 두는 용도로 짜여진 모델 2개짜리 아주 단순한 인공지능입니다. 경우의 수 판단을 빨리 하는 게 핵심이지요. 사실 구글이 하는 머신러닝들을 보면 알파고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더 복잡한 단계의 머신러닝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구글 포토의 경우에는 15개의 신경망이 사진을 읽어냅니다. 구글 서비스 뒤에서 일어나는 머신러닝이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일부만 알려져 있습니다. 각 서비스들이 데이터를 통해 경험을 쌓아가면서 실수 없이 서비스를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아, 어쩌면 개발자들을 상당수 대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누가 이길지는 아직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습니다. 이번 이벤트는 기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계의 특성을 이해하고,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랐는지를 판단하는 기회가 될 겁니다. 세상에 인공지능이 뭔지를 알리는 효과적인 이벤트이기도 하고요. 머신러닝에 대한 관심과 초점은 바둑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결국 우리 사회가, 산업이 어떻게 바뀔 지로 이어지는 게 좋겠네요. 저는 오늘부터 이 긴장 넘치는 바둑을 그대로 즐겨보렵니다.
[리뷰전문 유튜브 채널 더기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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